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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이외수 - 하악하악

이외수 - 하악하악

8. 미래는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젊은이들 보다는 재미있게 살 궁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젊은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무대다.

19.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23. 사람들은 대개 두 종류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는 자신의 외모를 비추어 볼 수 있는 마음 밖의 거울이고 하나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마음 안의 거울이다. 그대는 어느 쪽 거울을 더 많이 들여다 보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하늘 비친 몽요담에 귀를 씻는 모월봉.

24. 그리움은 과거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흩날리는 낙엽이고 기다림은 미래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흔들리는 꽃잎이다. 멀어질수록 선명한 아픔으로 새겨지는 젊은 날의 문신들.

28.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악면서 진실을 못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진실을 보고도 개인적 이득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죄일 뿐이다.

31. 마음이 좁쌀만 한 인간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크기도 좁쌀만 하고 마음이 태산만 한 인간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크기도 태산만하다. 마음이 크기가 좁쌀만 한 인간은 영혼이 좁쌀 속에 갇혀서 자신의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마음의 크기가 태산만 한 인간은 영혼이 태산위에 올라 천하만물을 두루 살피니, 지금 그대 영혼이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번 말해보시라.

42. 인간반성: "가만이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라는 말이 현대에 이르러 속담처럼 자주 쓰인다. 잘난체 할 수록 못나 보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찌질이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그들은 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지만 다양성이 곧 정당성은 아니라는 등식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항변이다. 인간의 외모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은 있는데 인간의 내면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46. 날은 저물어 인적은 끊어지고 밖에는 빗소리 가을 발목을 적시고 있네. 오늘은 풀벌레들도 노래할 기분이 아니라네. 공허한 집필실에 앉아 나 홀로 마시는 암갈색 음악 한 모금. 시간이 조금씩 녹고 있네.

51. 인생의 정답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정답을 실천하면서 살기가 어려울 뿐.

55. 그대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버릴 사람이 있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있을 사람이 있다. 혹시 그대는 지금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질 사람을 환대하고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을 천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하찮은 욕망이 그대를 눈멀게 하여 하찮은 사람과 소중한 사람을 제대로 구분치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나니, 훗날 깨달아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62.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이 물어뜯겨 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68. 아무나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서 가슴 안에 한 송이 꽃이라도 피운 적이 있는 사람이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69. 사랑의 절대법칙: 사랑한다는 말 뒤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영원히'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115.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120.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언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129. 오석같이 경도가 높은 낱말이 있는가 하면 찰떡같이 점성이 높은 말도 있다. 저 혼자 반짝이는 낱말도 있고 저 혼자 바스라지는 낱말도 있다. 언어의 맛을 볼 줄 모르면 언어늬 맛을 낼 줄도 모른다. 건성으로 읽지 말고 음미해서 읽으라. 분석 따윈 집어치우고 감상에 열중하라.

135. 가지고 싶은건 한없이 많은데 주고 싶은건 하나도 없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끝없이 먹기는 하는데 절대로 배설을 하지 않는 습성때문에 뱃속에 똥만 가득 들어차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139. 아내들이여. 남편들이 사랑고백을 자주 하지 않는다고 투정부리지 말라. 남편들이 날마다 출근해서 녹음기처럼 되풀이되는 상사의 역겨운 잔소리를 참아내고, 자존심을 있는 대로 죽이면서 거래처에 간곡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헤비급 역도선수의 역기보다 무거운 스트레스를 어깨에 걸치고 퇴근하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그대와 자식들을 사랑한다는 무언의 고백임을 명심하라.

150. 한 가지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게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이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 따로 없고 다만 '언제나'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167.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참, 울 마누라가 여자였지 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즉시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195. 자존심에 대못박기: 젊은이여. 세상이 그대를 몰라주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젊었을 때 이를 악물고 실력을 연마하라. 실력은 생존경쟁의 절대무기다. 거기다 고매한 인격까지 겸비할 수 있다면 그대는 문자그대로 천하무적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물론 그대가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여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성품을 가졌다면 젊은 날을 허송세월로 보내도 상관은 없겠지만.

198. 한 우물을 파다가 끝까지 물이 안 나오면 인생 막장 되는거 아냐, 라고 말하면서 손도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삽질 한 번 해보지 않고 그런 소리나 하는 사람들, 대개 남에게 물을 얻어먹고 살거나 한평생 갈증에 허덕거리면서 세상탓이나 하고 살아간다. 쩝이다.

207.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많이 깨닫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태산같이 높은 지식도 티끌 같은 깨달음 한번에 무너져버리나니, 오늘도 몽요담 돌거북은 번개 한 번에 삼천리를 두루 살피고 돌아온다.

249. 인간반성: 습관적으로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별다른 타당성도 없이 일단 부정부터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남의 의견이나 충언 따위는 경청하려 들지 않는 악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존심까지 조낸 강해서 절대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특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

250. 세상이 변하기를 소망하지 말고 그대 자신이 변하기를 소망하라. 세상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불만과 실패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찾아와서 포기를 종용하고,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성공과 희망이라는 이름의 초청객이 찾아와서 도전을 장려한다. 그대 인생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다.

256. 그대 주변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대가 "안심하세요, 제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해주면 그대를 믿고 안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요. 가족조차도 그대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인생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258. 절망과 고독의 껍질 속에 갇혀 있는 번데기여. 포기하지 말라. 혼신의 힘을 다해서 껍질을 뚫어라. 그러면 무한 창공, 눈부신 자유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리니.
2008-10-25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박경리 유고시집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얼마 전 세상을 타계한 박경리의 유고시집이다.

그의 生이 어떠했는지그가 무엇을 느끼며 한 평생을 살아왔는지,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달한다.

그의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모습에서 보여지는 그의 연륜과 지혜를한 평생을 마감하는 날 나에게서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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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나를 달래는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우주 만상 속의 당신

내 영혼이
의지 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갔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사람의 됨됨이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늘 먹어도 배고프다
천국과 지옥 차이다

가을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어떻게 빠져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라간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말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이별의 계절이다


영구불멸

영구불멸이란
허무와 동의어가 아닐까
영구불멸이란절대적
정적이 아닐까
영구불멸이란
모든 능동성이 정지하는 것
그것은 끝이다



육신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일쑤다
떠났다가도 돌아와서
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때론 슬프게 흐느끼고
때론 분노로 떨게 하고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은 한이라 하는가

2008-09-19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Robert Kurson - 기꺼이 길을 잃어라.


1.
그런 호기심이 오리 진의 부모에겐 산소와 같았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한 가지 뿐이었다. 세상을 탐험하려는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가족에게는 하인들과 요리사, 하녀까지 있었지만 삶을 적극적으로 호흡하지 않고 그냥 저절로 흘러가게 내버려둔다는 것은제임스 가정에서는 독과 같았다. 사람이라면 스스로 찾아나서는 삶을 살아야 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른다고 잘못된 지름길을 택하기도 하고 갈래 길에서 엉뚱한 쪽으로 가서 몇 시간씩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닿기도 하고, 재미있는 사람들과 우연히 만나 길동무가 되기도 했다. 지형에 서툴러 넘어지거나, 거기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장신구 가게나 축구 연습장에 가 있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헤매면서 메이는 세상의 가능성과 기꺼이 길을 잃을 마음만 있다면 너무나 넓고 매혹적인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은지 친구들이 물으면때로 겁이 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어디에 닿을지 전혀 알지 못할때 가장 멋진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또 헤매다 길을 찾았을때 어떤 기분인지 물어오면마치 앞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해줬다.
2.
모험하라.호기심에 답하라.기꺼이 넘어지고 길을 잃어라. 길은 항상 있다.


기꺼이 길을 잃어라..!

2008-09-19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오쿠다 히데오 - 스무살, 도쿄

1.
"젊다는 건 특권이야.자네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
2.
"지금 내가 스무 살이니까 스무 세살까지 어딘가에서 신인상을 타고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스물 다섯까지는 만화 잡지 연재를 따내고 싶어요. 안 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일어날거고,안하고 후회하느니 후회하는게 훨씬 낫잖아요?"


안하고 후회하느니...후회하는게 훨씬...낫겠지?
그렇지?

2008-09-19 naver blog에 작성한 글 입니다.

진 웹스터 - 키다리 아저씨

대부분 사람들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나는 길가에 주저 앉아서
행복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모을 거예요.
아저씨, 저 같은 생각을 가진 철학자를 본 적이 있으세요?

-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중에서

사토 다카코 - 한 순간 바람이 되어라 3. 땅!

가미야의 마지막 이야기!
<한 순간 바람이 되어라 3. 땅! >
가미야는 꿈에 그리고 그리던 남관동에 출전하고
결국엔 인터하이까지 오르게 되는 크나큰 성장을 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다스리고,
팀원들을 다독이며 함께한,
가미야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이어달리기.
'통'하는 느낌.
'찌릿'하는 느낌.
그 느낌이 4명의 주자 모두에게 전달되어졌을 때,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쥐고.
온 몸에 흐르는 전율을 느끼게되었던.

노력하는자.
그 모습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하게 되었던.
한 편의 감동의 드라마.

인생은,
세계는,
이어달리기 자체다.
배턴을 넘겨서 타인과 연결해간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구간에서는 완전히 혼자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사토 다카코,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중
2008-01-08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사토 다카코 - 한 순간 바람이 되어라 2 준비!

가미야의 2번째 이야기.
한 순간 바람이 되어라 2 준비!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 신짱이 성장해나가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진다.
팀원을 통솔하고 다독이는 주장이 된 신짱.
어느새 렌과 나란이 달릴 수 있게된 신짱.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많이 달리고 누구보다 달리기를 좋아하기에
앞으로 더 발전하게 될 3권에서의 가미야의 모습이 그려진다.
은근히 신짱이 좋아하는 듯한 다니구치와의 로맨스도 기대되고.
신짱이 아끼는 형, 겐짱의 사고가 어떻게 될 지도 궁금하다.

무언가에 빠진다는 것.
나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충동질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

< 한 순간 바람이 되어라 2 중에서 >

내 몸의 힘을 깡그리 써버렸다는 이 느낌...
미지의 속도, 내 몸을 깡그리 불살랐다는 느낌, 얼마나 통쾌한가!
이 속도로 달려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다.

내 몸을 칭찬해주고 싶다.
근육 한 올 한 올,
세포 하나하나가 다 사랑스럽다.
힘이 불끈 불끈 솟아오른다.
어떤 일이든 해치워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내부에 커다란 힘이 있다.
생전 처음 그렇게 생각했다.

2007-12-17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사토 다카코 - 한 순간 바람이 되어라 (1) 제자리로!

유망한 축구 선수인 형, 겐짱의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능부족으로 중간에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한 신지.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지가 친구인 렌과 함께 육상부에 가입한 후,
점차 달리기에 매료된다.
단지 전국에서 7위로 입상한 경력이 있는 렌이 달리는 것을 보고 싶어했던 신지가
재능은 있지만 연습을 게을리 하는 렌보다
달리기에 더 매력을 느끼고 연습에 매진한다.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렌과 함께 이어달리기 주자로 뽑혀
전국대회를 목표로 힘차게 두 발을 내 딛는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렌과 같은 편안하고 교과서 같은 동작이 나오지 않지만,
스타트라인에 서기도 전에 벌써 울렁거려서 화장실을 들락나락거리기 일쑤지만,
빨라지는 것.
그 꿈 하나로 힘차게 도약하려는 신지의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된다.

천재는 정말 타고 나는것일까.
그리고 타고난 천재들은 원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타고난 천재들을 평범한 사람이 이길 수는 없는 것일까.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피나는 노력을 하는 신지의 형, 겐짱.
재능은 타고 났지만 노력하는 모습은 (아직까진) 찾을 수 없는 렌
천재적일 정도의 재능은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려는 신지.
어떤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지 생각해보게 된다.

2007-12-08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서머싯 몸 - 달과 6펜스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책 표지에 고갱의 작품이 실려있는 이유는,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책은 고갱을 모델로 했기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서머싯 몸의 두 번째 작품,
쉽사리 손에서 떼어내기 어려웠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해준,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

책을 펼치기 전 그리고 읽는 동안 “달과 6펜스”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책 제목에 집착하는 습관이 생겼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분명 제목에서부터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이다.

학부 때 영문학 시간에 배운 자연 또는 정신과 물질의 대조?
어렴풋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달과 6펜스 동전 모두 동그랗지만 각기 다른.
달은 화가가 되겠다며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떠난 스트릭랜드가
타히티 섬에서 죽는 날까지 찾고자 했던 혼이 담겨있는 삶이라면,

6펜스는 런던의 문단과 사교계의 속물들,
마음은 순진하나 고뇌하는 예술 정신은 없고 잘 팔리는 그림만을 그리는 화가 스트로브,
육체적 관능만을 추구하는 블란치 스트로브,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고결한 삶을 선택한 동료덕분에 명예와 부를 누리면서도 그 동료를 멸시하는 알렉 카마이클,
가정을 떠났을 때 저주를 퍼부었던 남편이 천재로 알려지자 그의 아내였음을 자랑하는 스트릭랜드의 부인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현실세계의 삶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이들의 삶을 달과 6펜스로 압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했던 그의 삶을 과연 우리의 잣대로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나만의 잣대로 비난해도 되는 것일까
그의 삶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6펜스’의 삶 안에서 과연 행복할까

참고로 서머싯 몸의 여성 혐오적인 표현들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다면,
그가 혐오하는 것은 여성 자체가 아니라
그 사회의 틀에 박혀 있는,
다시 말해 남성 중심&남성 우월사회에 종속되어 있었던 여성상에 대한 혐오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중에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그 말은 아무도 자신의 기벽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또한 기껏해야 자기가 이웃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경향이 탈인습적이라면 세상 사람의 눈에 쉽사리 탈인습적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터무니없는 자존심을 가지게 된다. 위험 부담 없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문명인의 가장 뿌리 깊은 본능일 것이다. 여자가 인습을 넘어서려다가 성난 도덕심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게 되면 기겁을 하고 재빨리 체통이라는 방패를 찾는다. 나는 남들의 의견 따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허세이다. 그것은 남들이 자신의 조그만 잘못들을 비난할 때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들은 아무도 그 잘못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의 사물, 말하자면 자기 자아에게는 낯선, 어떤 목적의 도구가 되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마치 이국땅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 나라 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생각을 말하고 싶어도 기초 회화책의 진부한 문장으로밖에 표현한 길이 없는 사람들과 같다.

사랑에 빠진 기간에도 남자는 다른 일들을 하며 그 일들에 신경을 쓴다. 직업을 갖고 먹고 살아야 하니 응당 그 일들에 신경을 쓴다. 스포츠에 빠지기도 하고 예술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하며, 한 가지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일들은 일시적으로 미루어 둔다. 그때 그때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 한가지 일이 다른 일을 침범하면 못마땅해 한다.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데 비해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는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2007-12-09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막스 뮐러 - 독일인의 사랑

동화책 같은 삽화가 독일인의 사랑만큼이나 감미로웠던 책.
끝이 보이지 않은 사막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던 나에게 오아시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많은 이들이 참된 기독교 정신에 들어서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계시가 미처 다가오기도 전에 기독교가 처음부터 계시를 앞세우기 때문이에요.
나도 그 때문에 자주 불안을 느끼곤 했어요.
그렇다고 내가 우리 종교의 진실성과 신성함을 의심했던 건 아니에요.
다만 타인으로부터 거저 받은 신앙은 나의 권리가 아닌 듯했고,
또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어릴때부터 습관적으로 받아들인 믿은은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대신하여 살아주거나 죽어 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도 우리를 대신해서 믿어줄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자기의 속마음을 숨겨야 하는 것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아닌가.
관습이니 예의니, 체면이니 현명함이니, 처세술이니 하는 등의 이름을 붙여
우리에게 끊임없는 광대놀음을 요구하며,
우리의 삶 전체를 일종의 광대놀음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광대놀음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진실하고 솔직한 인간 본연의 태도를 되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심지어는 사랑에 있어서조차도 솔직하게 말하거나 묵묵히 침묵하지 못하고,
유명한 시 구절을 동원하여 표출하거나 한숨 짓는 식으로 아첨하면서 과장된 행동을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직시하며 헌신할 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의 보배가 아니다.
우리는 다만,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본 두 영혼이 손을 잡고 마주 바라보면서
이 지상의 짧은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그녀가 힘들어하면
내가 의지가 되어주고,
그녀는 내게 위안을 주며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로 머물기를 원할 뿐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어째서 자신의 삶을 유희처럼 바라보는 것일까.
오늘이란 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영원을 잃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고,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루고 있단 말인가.

행복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
고뇌에 찼던 날들에 대한 기억,
소리없이 스러져간 날에 대한 기억
이 앞에서는 우리를 에워싸며 묶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오랫동안 아들이 잠들어있는 풀 덮인 무덤위에 몸을 던지는 어머니처럼 거기에 몸을 던지고,
어떤 희망이나 소망도 이 쓸쓸한 집착을 방해하지 못하는 먼 과거의 추억에 잠기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애수(哀愁)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이 애수속에는 행복이 깃들여있으며,
그것은 뼈저리게 사랑하고 고뇌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나요?"
"왜나고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꽃한테 왜 피어있는지를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빛나고 있나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2007-11-24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김종광 - 율려낙원국 (2) - 낙원건설기

율려낙원국 율려인의 2번째 이야기, 낙원 건설기.
변산의 도적들과 그들의 아내될 자들이 율섬에 도착 후
허생이 그들만을 남겨두고 율섬을 떠날 때까지의 1년 동안의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 도적 포획기를 읽고서 두 번째 이야기가 얼마나 궁금했었는지 모른다.
허생이 이루고자 했던 그런 '지상 낙원'이 과연 현실가능한 것인지.
현실 가능하다면 어떤 삶이 그 곳에 펼쳐질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낙원은 어떻게 될 것인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들 하지 않던가.
첫 번째 이야기에서부터 짐작했었다.
시작부터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그의 이상스러우리만치 이상적인 포부는
조선땅의 모든 사람을 포용하지 못했다.
조선땅을 떠나기 싫어하는 도적들과 창기들을 포획(?)하여 반강제적으로 이끌고 떠났던 점.
조선땅을 떠나기는 싫지만 조선땅에서는 사회, 경제적인 약자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 사회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이들 - 그들의 약점을 이용했고
또한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
(왜 허생이 원하는 땅을 조선에 직접 건설해보려는 노력은 하지 못했을까.
내 짐작으론 허생 또한 그럴만한 그릇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괴짜양반>.<)
이렇게 떠난 이들이 과연 율려국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배불리 먹고, 함께 일하고, 남녀 차별도 없지만 진정한 자유가 없는 이 곳.
-아주 잠시동안은 빈부격차도, 신분 차별도 없었지만-
교육과 도덕으로 다스리겠다는 그의 포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법과 경찰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다스려지는 그 곳에서,
권력자와 피 권력자 사이의 갈등, 돈과 무력의 필요성이 더 절실히 대두 되는
조선 땅과 다를 바 없는 그 곳에서.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개똥밭에 굴러도 고향이 좋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조선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어찌 안 생길까.
이 땅을 세운 허생부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말이다.
(몇몇은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생각보다 순순히 율려인들은 장군을 보내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들 스스로가 이룩할 진정한 율려낙원국.

2007-11-20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당신이 앞으로 10년 이내 읽어야 할 책 100권 - 미술(하)

6. 김석철의 20세기 건축 산책/ 김석철/ 생각의 나무올해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피카소, 미로와 함께 3대 천재 중 한 명으로(왜 살바도르 달리가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지만) 손꼽히는 예술가인 가우디를 알고 싶다면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등 20세기 현대 건축을 이끈 건축가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단 그 입문서로 이 책을 펼쳐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건축이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어려운 그 무엇으로 생각되는 것은 어느 시기부터인가 건축이란 것이 하늘 높이 치솟는 마천루란 이미지에 가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은 까닭일 수도 있다. 사람이 빠진 건축은 단지 바벨탑에 불과하다. 그 자신이 논란의 대상이었던 '예술의 전당'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을 지은 건축가로서 또 교육자로, 건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들의 저자인 김석철 씨는 현대 건축의 다양한 면모를 한 권의 책에 열두 명의 건축가를 빼곡하게 세움으로써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건축가를 문명의 상형문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명이라는 것이 도시를 의미한다고 했을 때 그의 표현은 너무나 적절한 것이다. 이 책은 건축의 역사나 이념, 건축공학의 개념 등 추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현대건축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건축가들의 삶과 주요 작품, 건축관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그들의 건축물들을 담은 사진을 통해 이들이 남긴 작품들이 어째서 걸작 예술로 남게 되었는지 자신의 소회를 담아 소개하고 있다. 다만 때때로 자신의 소회가 지나쳐 위대한 건축가들의 면모를 가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과 도판 상태의 수준이 균일하지 않다는 흠은 있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건축가들을 다루면서 이 정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 드문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큼 좋은 책이다.

7. 20세기 서양 조각의 거장들/ 정금희 / 재원 - 근대 미술이 회화 중심으로 발달해서인지 국내의 미술계 상황이 회화 중심의 미술 교육이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조각에 대한 좋은 책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조각가의 길을 가고 싶었으나 건강과 재정적인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조각에 대한 구상으로 달랬던 것처럼 조각가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달랠 수 있는 책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이 책의 저자인 정금희 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조각가 자드킨 오십에 대한 논문을 쓴 적도 있는 미술학자이다. 이 책은 20세기 서양 미술의 중요 조각가 10명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로댕과 부르델, 브랑쿠시, 자코메티, 칼더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조각가 마이욜과 자드킨 오십도 빼놓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책치고는 기대 이상의 기쁨을 준 책이고, 20세기 서양 조각의 주요한 흐름을 일구었던 조각가들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조망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런 책은 독자들이 많이 구입해서 읽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좋은 책의 필자가 좀더 심화된 다음 책을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8.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 이석우/ 가나아트- 19세기 한 무명 화가의 작품이 20세기 소더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 화가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빈센트 반 고흐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고흐의 편지들이 출판되고 그의 삶이 대중들에게 그렇게 광범위하게 유포되지 않았더라도 오늘날 고흐가 이룩한 그런 신화는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신화는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광휘는 현재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다. 고흐가 편지를 그렇게 잘 쓰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그에 대해서 그토록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열광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고흐의 그림에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사실 얄팍한 자존심 한 장 걷어내고 보면 그의 치열하고 불우한 삶에 대한 그렇지 못한 자들의 부러움과 그의 삶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부분도 큰 것이다.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이석우 교수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비평가가 아니다. 그는 단순히 미술 애호가로서 우리들을 화집이나 팜플렛의 연보 나열에 갇힌 작가들의 인생과 그들의 내면 세계로 인도해 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이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 말인지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화가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화가들로 그동안 화랑에서 다만 호당 얼마라는 식으로 평가되던,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는 그만큼 무명일 수밖에 없는 우리 화가들의 치열한 인생이 녹아 있다. 한국의 뚤루즈 로트렉이라 했던 손상기를 비롯해서 우리에게 예술세계보다는 동백림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이응노 등 13인의 한국 화가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가끔 미술 팜플렛을 읽다보면 비평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할 글들을 비평이라고 써놓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미술 감상이란 게 반드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게 된다면 더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교양을 갖추는데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는 책이다.9. 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가림/ 월간미술<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의 시인이자 현재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있는 이가림 선생이 오랫동안 <월간미술>에 기고하였던 내용들을 묶어 책을 냈다.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미술을 앞에 두고 그에 걸맞은 작가들을 어울리게 하는 것인데 광범위한 내용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나 글읽는 재미만큼은 만끽할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프랑스의 시인인 폴 엘뤼아르는 '파블로 피카소'라는 제목의 시에서 '해맑은 하루 나는 만났다 낙천적인 얼굴의 친구'라고 쓰고 있다. 피카소는 그의 시집 <사랑촵시>의 삽화를 그렸고, 사상적으로 엘뤼아르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림과 시를 통해 스페인 내전과 그 와중에 있었던 게르니카에서의 학살을 고발한다. ''그림'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그림을 찾아나선 예술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피카소와 엘뤼아르처럼, 장르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교감을 나눈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피카소와 엘뤼아르처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사람들에 대한 것도 있고, 플로베르와 쿠르베처럼 실제 교우관계는 없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사실주의'를 확립했던 사람들의 예술관을 비교하는 글도 있다.그리고 한 가지 부러웠던 점은 저들은 미술가와 문학작가의 교감이 가능한데 우리는 왜 안 되는가이다. 결론 둘다 상대의 예술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10.춤추는 죽음1.2/ 진중권/세종서적- 먼저 일러두고 싶은 말씀은 이 책을 읽기 전에 혹은 읽은 후에라도 필립 아리에스의 저서들을 읽어보는 일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죽음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아리에스의 책을 읽어둘 필요가 있다. 그는 죽음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중요한 역사학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진중권이라고 하면 '전투적 글쓰기'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매우 불행한 일일 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중요한 미학 관련 연구자이자 필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역량과 에너지를 온전히 학문적인 분야로 쏟기엔 우리 사회가 그의 독설을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이 책 '춤추는 죽음'을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무렵엔 진중권이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던 무렵이라 그가 이렇게 훌륭한 미술과 미학 연구자인줄 미처 몰랐던 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때문에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아주 재미있었고, 유익한 책이었다. 동양에서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역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서야에서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학이란 학문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책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 진중권은 유럽의 중세로부터 현대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 이르는 죽음의 여정을 미술과 기독교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란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죽음은 "우리의 죽음"으로부터 "나의 죽음"으로 진화해오고 있다.

당신이 앞으로 10년 이내 읽어야 할 책 100권 - 미술(상)

당신이 앞으로 10년 이내 읽어야 할 책 100권 - 미술(상)

미술이란 미(美)를 재현하는 예술이다. 이때의 미(美)란 무엇인가? 재현(혹은 표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 따라서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미술이란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예술이며 조형예술이다.(한 마디로 나도 잘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흐흐.)우리의 일상에서 늘 가까이 접하게 되지만 늘 어렵게만 여겨지는 것이 미술이고 보면 이곳도 공부없이 접근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이러저런 궁금증들을 해소하기 위해 읽어왔던 미술관련 서적들 중에서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추려 보았다. 여러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1. 서양미술사/ E.H.곰브리치/ 예경/ 1999년- 지금까지 출판된 책 중에서 미술에 관한 한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일 것이다. 곰브리치는 이 책을 '자신들의 힘으로 이제 막 미술 세계를 발견한 10대의 젊은 독자들'을 위해 저술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젊은 독자들은 '유식한 체하는 전문 용어의 나열이나 엉터리 감정들을 재빨리 알아내어 분개할 줄 아는 비평가'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곰브리치의 그런 바램대로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은 나라에서 고루 사랑받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닌 탓인지 우리의 고등교육이 잘못된 탓인지 초·중·고등 교육을 통해 미술을 공부했음에도 의외로 읽기가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의 범위가 넓고, 그가 쉽게 서술한다고는 했으나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서양미술사'라는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책이 고전이 된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 책은 작자 곰브리치 자신이 세운 원칙에 충실한 책이므로, 곰브리치의 역사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철학이 잘 드러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서술하며 세운 그의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도판으로 보일 수 없는 작품은 가능한 한 언급을 피할 것, 둘째는 진정으로 훌륭한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할 것, 세번째는 임의대로 도판을 선정하지 않을 것 등이다. 서양의 오랜 미술사를 단 한 권의 책 모두 소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뼈대가 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는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정말 초심자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책이라는 점에는 이의를 달 수 없다. 이 책의 분량은 700페이지에 달하고, 컬러 도판 413개가 실려 있다.(나는 '예경판'이 아니라 열화당 구(舊)판본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은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다.)

2. 당신의 미술관1.2.-한눈에 보는 서양미술사/ 수잔나 파르취/ 현암사- 수잔나 파르취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저술은 미술사가의 것이라기 보다는 저술가로서의 성격이 다소 짙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필자를 일러 '중간필자'라는 말로 표현하고는 하는데, 중간필자란 전문가이거나 전문가에 준하는 능력을 갖춘 필자로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어렵거나 전문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서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필자를 의미한다. <당신의 미술관>이란 책의 국내 인기도 상당한 편이라 그의 또 다른 책이 번역·소개되어 있는데 <집들이 어떻게 하늘 높이 올라갔나 - 움막집에서 밀레니엄돔까지 서양건축사>가 그것이다. 곰브리치의 책이 다소 어렵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파르취의 이 책으로 먼저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은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수잔나 파르취가 책 속에 건설한 가상 미술관에 첫발을 딛는 셈이 된다.

1권에는 동굴 벽화부터 중세 미술까지(제1실~10실)를 다루고, 2권은 르네상스부터 현대 미술까지(제11실~16실)을 다루고 있는데 화가의 자화상으로부터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가상미술관의 큐레이터는 당신을 이끌 것이다.쉽다는 것 말고 이 책의 장점 중 그 시대가 창출한 미술 작품이나 사조와 더불어 그런 작품을 산출하게 만든 시대의 흐름도 함께 짚어준다는 것이다. 3. 건축이야기/ 패트릭 넛갠스/ 동녘- 미술관련 책들을 소개하면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미술 관련 책들은 하나같이 가격이 좀 비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도판들이 포함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 컬러인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면 우선 전체적으로 붉은 표지에 'The Story of Architecture'라고 쓰여진 영어 문구를 보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건축에 관한 이야기이다.스토리는 히스토리와는 좀 다른 것이긴 하지만 이 책은 세계건축사를 다루고 있는 방대한 시간의 압축이 들어 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책도 상당히 무겁고, 큰 글씨에만 익숙해져 있는 분들에게는 재미없는 책이다.(뭐, 건축이라면 집 근처에서 등짐지고 스티로폼이나 시멘트 포대를 나르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은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책이기도 하다.) 책값도 40,000원이나 한다. 하지만 건축이 미술의 당당한 한 분야이며 우리가 도시에 살면서 늘상 접하게 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예술이란 사실을 깨우치고 있는 분이라면 도전해 볼만하다. 당신보고 직접 집을 세우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 책은 건축의 발전 단계에 따라 21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이야기는 건축에 관한 몇 가지 기초적인 사실들로부터 출발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 단순하고 소박한 '집'의 형태가 어떻게 '인간 정신의 숭고한 표현'이 되는가를 찬찬히 짚어주고 있다.만약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우리 역사 고적을 되짚어 보는 여행길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문화 흔적들이 과연 어떤 형태의 것들일지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건축이 갖는 중요성을 새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아마도 대개 집의 형태, 즉 건축의 형태로 먼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는 분이라면 영화 '미이라'에 등장하는 악당 '임호테프'가 사실은 피라미드를 건설한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이래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4. 조각이란 무엇인가 - 열화당미술책방 014/ 허버트 리드/ 열화당- 미술이란 건 분명히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의 예술임에 틀림이 없다.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에 있어서 시각이란 것은 크게 필요치 않고 때로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데 미술은 본다는 행위 자체가 감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령 장님이라도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조각이 될 것이다. 물론 보면서 만지는 행위에야 따라갈 수 없겠지만 조각은 예술 장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촉각'에도 의존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조각의 출발점이랄 수 있는 선사시대의 부적(토템)으로부터 현대의 조각 예술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전체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조각의 기원과 역사, 특성 등 조각의 다양한 요소들을 247컷의 도판들과 함께 해설하고 있다.허버트 리드가 지은 책 중에 시공사에서 나온 <간추린 서양 현대조각의 역사>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조각에 대한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5. 미술로 보는 20세기 - 학고재신서19/ 이주헌/ 학고재- 이도저도 보기 싫은 분들에게 이 책은 꼭 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우선 개인적으로 젊은 미술비평가인 이주헌 씨의 글을 좋아하는데다가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저술이 시간적인 개념으로 접근한 통사적 서술이 아니라 주제별로 20세기의 특징들을 검색한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주제들로 꾸며져 있다. 1장 야망의 도시(메트로폴리스/ 지하철/ 범죄/ 유행과 패션), 2장 관능의 시대(성녀에서 요부로/ 네이처리즘/ 성 상품화/ 에이즈 시대의 성), 3장 혁명(멕시코 혁명/ 러시아 혁명 1/ 러시아 혁명 2/ 문화대혁명), 4장 팝 문화(팝의 시대/ 마릴린 먼로/ 키치/ 매스 미디어), 5장 전쟁(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 6장 갈등의 시대(대공황/ 정치적 탄압과 양심수/ 퇴폐미술 / 인종 갈등/ 물신의 투쟁/ 제3세계), 7장 사상(니체와 표현주의 / 프로이트와 초현실주의 / 브레히트와 레제/ 사르트르와 자코메티/ 푸코와 마그리트/ 리오타르와 포스트모더니즘), 8장 여성(잃어버린 성/ 페미니즘/ 한국의 여성), 9장 일상(사고/ 가정/ 한국의 아버지), 10장 영화(빛의 제국 / 스타의 탄생), 11장 테크노피아(대량생산 시대의 미학/ 스피드/ 핵의 시대/ 전자 시대의 미술/ 가상현실), 12장 잃어버린 낙원(끊어진 사슬/ 신체의 항의/ 되돌아보는 자연/ 신천지를 향하여)이 그것이다.이주헌은 미술을 통해 20세기를 재구성하고 있다. <2002/03/08>

'나'를 찾아가는것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Demian}은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작품의 형식에서만이 아니라 소재적인 면에서도, 즉 저자 자신의 전기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주인공 징클레어의 삶은 헤세가 소년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닮고 있고, 또 헤세의 중년기의 체험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서 유의할 점은 징클레어의 이야기에서 헤세의 소년시절은 외적인 삶과 관계되고 헤세의 중년기는 내적인 삶과 관계되는데 이 나중의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헤세의 중년기 체험은 그 스스로가 그의 "삶의 두 번째 큰 변화"라 일컫는 그의 내적인 변화이고, 그의 자기 인식과 삶에 큰 전환을 가져 온 것이다. 이러한 내적 변화 자체는 지금까지 자연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애썼던 헤세가 자기 내면에서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를 삶는 내면성의 인간으로 변화된 것을 뜻한다. 헤세는 이를 다음처럼 기술한다. "이 목적지는 다시 하나의 은신처이다. 그것은 동굴도 아니고 배도 아니다. 나는 나의 은신처를 나의 내면에서 찾아 갖고자 한다. 그것은 '나'만이 있는 하나의 공간이고 점이며 그 곳으로는 세계가 미치지 않고 그 곳엔 '나'만이 거처하고, 그 장소는 산이나 동굴보다 안전하고 관이나 무덤 보다 안전하고 잘 보호돼 있다. 그것이 내 목적지이다. 그 곳으로 아무 것도 들어가서는 안되고, 그 곳이 완전히 '나'가 돼야 한다." 그러니까 헤세는 이제부터는 자연에서가 아니라 그가 찾으려는 '나'를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하는 '안식처'로 삼겠다는 것이다. 헤세의 이러한 '큰 변화'는 1916년과 1917년 사이에 일어났고, 그 직후인 1917년 9월과 10월에 그가 [데미안]을 집필했으며, 징클레어도 당시의 헤세와 똑같이 자기 내면 속의 '나'를 찾는 것을 자기의 삶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헤세 자신의 내적 변화의 결실이다. 징클레어는 그의 이야기의 중반에서 '나'를 찾는 것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의 지상 과제임을 천명할 정도이다. "새로운 신들을 소망한다는 것은 잘못된 짓이었다. 세상에 어떤 무엇을 주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짓이었다. 각성한 인간들에게는 단 하나의 의무 이외에 어떤 다른 의무도 결코, 결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의무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고, 자기 속에 확고하게 있게 되는 것이고, 어디로 가게 되든 간에 자기의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다."(126) 징클레어가 '나'를 찾는 것 또는 '자기'가 되는 것을 그의 삶의 최대의 과제로 삼는다는 것을 소설 {데미안}의 '머리말'에서 또한 화자가 예고한다. 즉 화자와 주인공이 동일인인 이 1인칭 소설의 머리말에서 '이야기하는 나'로서의 화자 '나'는 '행동하는 나'로서의 주인공 징클레어가 앞으로 '자기'가 되기 위해서 '나'를 찾는 것을 그의 목표로 한다는 것을 알린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찾는 자이다. 그러나 나는 별들이나 책들에서 찾지 않는다. 나는 나의 내면에서 나의 피가 속삭이는 가르침들을 듣기 시작한다. [...] 어떤 인간의 삶도 자기 자신으로 가는 길이다. 그것은 하나의 길을 가는 시도이고, 하나의 오솔길을 암시하는 것이다."(8) 유의할 것은 이 인용문에서 화자가 거론하는 '내면'은 가르침을 주는 소리('나의 피가 속삭이는'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징클레어가 이러한 내면의 소리에서 얻는 가르침에 따라 자기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징클레어가 자기찾기의 과정에서 그렇게 그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예컨대 자기찾기 과정의 중반에서 그는 다음처럼 내면의 소리를 듣기에 몰두한다. "나는 외부세계에 대해선 완전히 무관심했으며, 종일 내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내면의 심층에서 살랑살랑 흐르는 물의 소리, 금지된 흐름이나 검은 흐름의 소리를 듣는 일에 몰두했다."(69) Ⅱ 소설 {데미안}에서 징클레어의 자기찾기는 여러 해 동안의 '자기형성(自己形成)'의 과정 또는 여러 해 동안의 점진적인 '내적인 성장'을 거쳐서 비로소 그 목표에 도달한다. 특기할 것은 이 내적인 성장과정의 여러 중요한 부분이 무의식에 의해서, 특히 일련의 꿈에 의해서 표출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여기선 무의식 또는 꿈이 인간의 내적 성장의 과정을 나타낸다는 것인데 이는 C. G. 융의 정신분석 심리학의 학설과 일치한다. 융은 꿈의 대상작용(代償作用) 기능을 전제하고 나서 인간의 내적 성장의 과정을 '자기화(自己化)의 과정'이라 일컬으면서 이것이 꿈에 의해 표출된다는 것을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대상작용의 개념으로써 물론 꿈의 기능에 대해서 지극히 보편적인 성질을 말했을 뿐이다. [...] 무수히 이어지는 꿈의 연속들을 관찰하면 점차로 개개의 꿈의 배후에 숨어 있는 한 현상이 포착된다. 그 현상은 개별 인간에게서 진행되고 있는 일종의 성장 과정이다. 우선 대상작용들은 일방적인 것을 그때 그때 균형 잡는 것으로 혹은 방해된 균형을 바로잡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깊이 살펴보고 더 깊이 알아보면 흡사 일회성의 이 대상행위들이 일종의 계획에 맞추어 이어져 있다. 대상행위들이 서로 연관이 있고 의미심장하게 한 공동의 목표에 종속돼 있다. 그래서 장기간의 꿈들의 연속은 통일이 없는 일회적인 사건들의 무의미한 연속이 아니고 치밀하게 계획된 과정과도 같은 성장 과정 혹은 질서 과정이 된다. 장기간의 꿈들의 연속의 상징 속에 스스로 나타나는 이 무의식적인 과정을 나는 '자기화의 과정 Individuationsproze?'라 일컫는다." 헤세는 소설 {데미안}을 집필하기 이전에 융의 꿈의 기능에 관한 학설과 더불어 무의식에 관한 정신분석 심리학의 견식을 많이 갖고 있었다.
즉 그는 1916년 무렵에 "일종의 정신분석 입문서"가 될 만한 레온하르트 프랑크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거기서 "프로이드류(流)의 학설의 흔적"을 감지하였다. 그리고 당시에 프로이드나 융 등의 무의식에 관한 논문들을 깊은 관심을 갖고 읽었고, 더욱이 그들의 이론이 무의식에 관한 그의 개인적인 견해와 원칙적으로 동일함을 확인했다. "이 새로운 학술의 심리학에 대해서 예전에 추호의 관심도 없었던 내 자신에게 프로이드, 융, 슈테켈 등등의 논문이 새롭고도 중대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읽었다. 그 논문들 모두에서 나는 정신현상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내 스스로 작가들이나 관찰들에서 얻은 예상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의 예견, 나의 어렴풋한 상념, 나의 얼마쯤 지각하지 않았던 지식 등이 그들의 글에서 표현되고 성문화돼 있음을 알게 됐다." 이어 헤세는 정신분석 심리학을 통해서 무의식, 특히 꿈에서 정신현상을 파악하는 일이 작가에게 매우 유익한 것임을 강조한다. "정신분석의 길, 즉 회상 꿈 연상으로부터 정신현상의 근원을 찾는 일을 어느 정도 행했던 자는 '자신의 무의식과 더욱 친밀한 관계'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을 불변의 소득으로 갖게 된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더욱 열심히 더욱 효과 있게 더욱 정열적으로 왕래하게 된다. 그는 '의식역하(意識?下)에' 머물러 있으며 주목하지 않았던 꿈들에서 일어나는 것을 많이 밝혀 낸다." 이것 모두를 감안하면 소설 {데미안}에서 헤세가 징클레어의 내적 성장의 과정을 형상화하는 데에 부분적으로 무의식, 특히 융의 학설과 일치하는 꿈의 기능을 활용한 것은 한 신념, 즉 그 자신의 생활체험과 그가 밖으로부터 얻은 정신분석 심리학의 지식에서 비롯한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생활체험이란 무엇보다 그의 신경병과 그 치료를 위한 그의 랑 박사와의 대담이 되는데 이와 관계해서 후고 발 Hugo Ball의 주장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는 헤세가 랑 박사와 "약 60회의 대담"을 가졌고, 이 "대담의 결실이 [...] {데미안}의 전부가 된다"고 한다. 이 주장은 무엇보다 정신분석 심리학의 논문들을 읽고 얻은 헤세의 지식을 배제하고 있는 탓으로 제한적인 타당성을 가진다. 부연할 것은 이 소설에서의 꿈의 형상들은 신비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Ⅲ 앞서 인용한 화자의 머리말에 따르면 징클레어는 자기찾기 또는 내적 성장 과정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여기서 내면의 소리는 그의 이야기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의 자기형성 과정에서 갖게 되는 그의 그때 그때의 체험에 대한 성찰이 알리는 것이다. 그의 그러한 체험들은 그의 의식하는 삶과 그의 무의식의 두 영역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무의식의 영역은 주로 꿈과 관계된다. 그가 성찰하는 그의 체험의 대상은 두 극성(極性)이다. 두 극성은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이고(93), 전자를 "선(善)", 후자를 "악(惡)"이라 일컫기도 한다.(11) 그리고 신적인 것은 "밝은 세계"의 속성, 악마적인 것은 "어두운 세계"의 속성이다.(11, 109) 징클레어는 무수히 이러한 극성의 체험과 성찰을 하다가 끝내 자기를 찾는다. 그가 끝내 찾아낸 자기 또는 '나'는 두 극성, 즉 신성(神性,'신적인 것')과 마성(魔性, '악마적인 것') 모두를 존중하고 이 두 극성을 결합하는 총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인간이다. 한편 징클레어의 자기형성에 필요한 그의 체험과 성찰과 관계해서 우리는 그의 무의식, 특히 그의 꿈들의 구체적인 기능을 명시 하고자 한다. 그의 자기형 과정에서 그의 꿈들은 그의 그때 그때의 현위치를 밝히고 나아가 그의 목적지로 가는 방향을 예시한다. 그러므로 그의 꿈들은 그에게 이정표(里程標)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그의 꿈들은 그가 목표에 도달하는 데 긴요한 도움을 준다. 징클레어의 자기형성 과정은 그 진척(進陟)의 정도에 따라 3단계로 구분된다. 제1, 2, 3 단계는 각각 그의 성장의 초반, 중반, 종반이 되며, 이 3개의 단계는 징클레어의 성장의 자연적인 순서에 따라 이야기되고 있다. 제1단계는 징클레어의 초등학교 시절에 해당되고, 그 이야기는 제1장부터 제3장까지의 것이다. 제2단계는 그의 김나지움 시절에 해당되고, 그 이야기는 제4장부터 제6장까지의 것이다. 제3단계는 그의 대학시절에 해당되고, 그 이야기는 마지막 두 개의 장, 즉 제7장과 제8장의 것이다. 징클레어의 이러한 자기형성 과정은 10세부터 20세까지에 이르는 약 10년간의 그의 생애에서 진행된다. 달리 말해 소설 {데미안}의 기본 이야기는 약 10년 동안에 전개되는 징클레어의 자기형성 과정의 이야기이다. 제1단계는 원래 밝은 세계에 속하는 징클레어가 어두운 세계를 체험하고, 나중에는 두 세계, 즉 "전체 세계"(62)를 존중하는 사상에 접근해 가는 것으로써 특징 된다. 징클레어의 어두운 세계의 체험은 처음엔 이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인 악동 크로머에 의해서, 다음엔 데미안에 의해서 이뤄진다. 데미안은 악마적인 속성도 갖지만 동시에 신적인 속성도 갖는다. 데미안은 두 속성 모두를 결합하고 있는 삶을 지향하는 인간이고, 이 점에서 단지 한 쪽의 속성, 즉 악마적인 속성만을 갖는 크로머와 다르다. 이로써 데미안은 징클레어에게 특별한 역할을 한다. 그는 징클레어에게 자기형성의 조건을 점진적으로 알리면서 바람직한 '나'를 발견케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그는 징클레어를 종국에는 '전체 세계' 존중의 삶을 하는 일종의 데미안이 되게 한다. 징클레어의 이야기를 전하는 책제목이 '데미안'으로 돼 있는 것이 이를 시사한다. 부연할 것은 징클레어가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 둘 다 존중할 수 있기 위해선 애초에 소속돼 있는 밝은 세계의 생활규범을 부시고 어두운 세계를 수용할 대담성을 갖는 일종의 "카인"(34, 132)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그의 자기형성의 우선 조건이 되고, 또한 데미안으로부터 이를 직간접으로 배우게 된다. 크로머를 통한 어두운 세계의 체험은 징클레어에게는 자기형성의 한 전제가 된다. 이 체험에 의해서 징클레어는 악마적인 속성이 특정 타인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내재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런 인식이 그 후에 그에게 데미안의 전체 세계 존중의 사상을 수용케 하는 한 동인이 된다. 크로머와의 만남에서 얻게 되는 어두운 세계의 체험은 징클레어로 하여금 비싼 값을 치르게 한다. 징클레어가 하지도 않은 사과 도둑을 영웅심에서 사실처럼 꾸며서 이야기한 것이 빌미가 돼 악동 크로머의 협박을 받는 가운데 갚기에 힘겨운 "2마르크"(18)의 '거액'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강압을 당한다. 이로 인해 징클레어는 생전 처음으로 가정부의 장바구니에서 잔돈을 훔치는 절도를 해야 하는 곤욕과 크로머의 종복이 돼야 하는 수모를 당한다. 이 과정에서 징클레어는 내적으로 한편으로는 죄책감과 후회, 밝은 세계에의 향수와 절망감 등으로 고뇌를 거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어진 곤경의 불가피성을 절감하고 싹터 오르는 마성을 감지한다. 징클레어의 꿈은 그의 이러한 내적 상황을 반영한다. 크로머의 마수에 걸려든 후의 징클레어의 첫 꿈은 밝은 세계에의 복귀를 바라는 소원을 반영한다. 그는 그 날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죄의식으로 번민하면서 부모로부터의 구원으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되기를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그는 잠들기 전까지도 떠오르는 크로머의 얼굴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크로머의 꿈 대신에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는 꿈을 꾸었다. "우리는, 부모님과 여동생들 그리고 나는 보트를 타고 가고 있었으며 우리의 주위는 휴가 날의 평화와 광채로 가득했다."(23) 가족과 함께 밝은 세계에 있고 싶은 징클레어의 간절한 소원이 꿈에서 구현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꿈은 그의 현실에서 결여돼 있는 것을 대상(代償)해 주는 것이다. 이 꿈은 그의 무의식에선 신성(神性)이 지배하고 있으며 마성(魔性)이 조금이라도 용인될 수 없음을 알린다. 이는 다시 악마와 손을 잡았던 것을 절대적으로 죄악시하는 어린 징클레어의 의식과 일치한다. 징클레어가 크로머로부터 돈을 강요당한 지 몇 주되는 무렵에 밤마다 꿈을 꾸는데 그 꿈들은 그가 크로머 때문에 갖은 고역을 치르는 것을 나타낸다. 당시에 현실의 징클레어는 돈을 다 주지 못한 탓으로 크로머로부터 질책과 협박을 받는 이외에 그의 아버지의 심부름을 대신하고, 행인의 등에 종이 쪽지를 붙이기도 하고, 또 한 쪽 다리로 서 있어야 하는 등의 벌을 예사로 받는다. 징클레어의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이 당시의 꿈들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많은 밤의 꿈들에서 나는 이러한 고역을 계속했고, 그 때마다 악몽의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27)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도 여전히 크러머에게 얽매여 시달리고 있는 징클레어가 역시 그러한 일과 관계되는 꿈을 자주 보는데 그 꿈들이 색다른 것들이다. 즉 그 꿈들에선 크로머가 징클레어가 현실에선 시키지 않는 일들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꿈들에선 징클레어가 크로머에게 그의 노예가 될 정도로 전에 없이 완전히 예속돼 있다. "나의 꿈들에선 그가 나의 그림자와도 같이 나와 함께 지냈고, 또 이 꿈들에선 그가 현실에서 나에게 시키지 않았던 일을 나에게 시키고 있었으며, 나는 철저히 그의 노예가 됐다."(35) 이러한 꿈들 중에는 징클레어에게 가장 무서웠던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꿈이었다. "크로머가 칼을 갈고 나서 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우리는 가로수 길의 나무 아래에 서 있으면서 누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누구를 기다리는지 몰랐다. 그러나 누군가가 오자 크로머가 나의 팔을 누르면서 저게 내가 찔러야 할 자라고 말할 때 그게 나의 아버지였다. 그 때 내가 깨어났다."(35-36) 이 꿈은 징클레어가 현실에선 시도하지도 않고 또 시도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여 주지만 당시의 그의 무의식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징클레어에게서 아버지는 밝은 세계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 꿈은 그의 무의식에선 어두운 세계 또는 악마적인 것이 밝은 세계 또는 악마적인 것을 제압할 정도로 강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꿈을 비롯한 당시의 그의 꿈들 모두가 그의 무의식의 이 같은 상황을 나타낸다. 그 꿈들 모두가 그를 어두운 세계를 대표하는 크로머의 '노예'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 살해기도의 꿈에서의 방금 언급한 의미의 도출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징클레어에게서 이전에 일어났던 일 하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징클레어가 크로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는 고난을 당한 직후에 자기의 그러한 참상을 감지 못하고, 때문에 그의 마수로부터 자기를 구해 낼 수 없는 아버지를 경멸하고 "내가 아버지보다 우월하다"(21)는 오만한 생각을 했던 일을 말한다. 밝은 세계를 대표하는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징클레어의 이같은 무엄한 태도를 화자는 "아버지의 신성(神聖)에 최초의 균열을 낸 것"이고, 자기형성을 위해 지금까지 기댔던 "기둥"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21) 이어 화자는 밝은 세계를 파괴하는 그같은 성향은 "가장 비밀스러운 밀실"(21)에서 계속 남아서 커진다고 한다. 화자의 이러한 예고가 아버지 살해기도의 꿈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이 꿈을 꾸었던 당시의 징클레어는 현실에서 그러한 꿈에 의해 지배된 삶을 했다. "나는 현실적인 것보다 [...] 이러한 꿈들 속에서 살았고, 이러한 그림자들에게 힘과 삶을 빼앗겼다."(35) 이는 그의 의식이 무의식에 의해 지배돼 있고, 때문에 그의 의식에서도 악마적인 것이 신적인 것을 제압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그의 의식에선 그가 밝은 세계를 수호할 의향이 지극히 미약하고 반대로 어두운 세계를 수용할 의향이 엄청나게 커진 것임을 뜻한다. 이에 상응되게 당시에 그는 가끔씩 밝은 세계에로의 "향수"(36)가 강렬하더라도 그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현상황을 그의 "운명"(37)으로 받아 드렸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꿈들을 보았던 당시에 징클레어가 또한 데미안을 꿈꾸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전에 데미안으로부터 카인 예찬론을 들은 적이 있었고, 그 후에 이번 꿈에서 그와 재회하는 것이다. 꿈에서 데미안이 크로머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박해와 폭력을 가했지만 그는 데미안에게서 받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크로머에게서와는 달리 기꺼이 받고 싶었다. "내가 크로머에게서 고통과 강압 속에 받았던 모든 것을 데미안에게선 기꺼이 받고 싶었고, 그 때의 나의 감정에는 환희와 두려움이 들어 있었다."(36)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데미안은 악마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크로머와 동일하지만, 신적인 속성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즉 신성과 마성의 두 속성을 각고 있다는 점에서 크로머와 다르다. 데미안은 두 속성 다 존중하고 그것에 입각한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크로머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니까 무의식에서 징클레어가 크로머보다 데미안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당장은 데미안에게서 크로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악마적인 세계에로 유도되더라도 앞으로는 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 세계를 수용하는 길로 전환할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예고한다. 얼마 있다가 징클레어는 실제로 데미안의 안내에 따라 전체 세계를 수용하는 사상에 접근할 기회를 갖는다. 징클레어가 이른바 카인의 "이마 표시"(30, 34)를 단 데미안의 힘에 의해 크로머로부터 해방되고, 그 때부터 그러한 기회를 갖게 된다. 그 후로는 크로머는 영영 사라지고, 데미안이 자기형성의 과정에 있는 징클레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 그 후 1년 이상이나 지나서 징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전체 세계 존중의 사상을 역설하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일체를, 전체 세계를 존중하고 성스럽게 여겨야 한다. 이 인위적으로 분리해 놓은 공적인 절반만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신을 위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를 위한 예배도 가져야 한다. 이게 옳은 거야. 아니 악마도 내포하는 신을 창출해야만 한다."(62-63) 이러한 데미안의 종교관 또는 세계관은 징클레어가 그새 남몰래 품고 있던 생각과 일치한다. "그것이 정확히 내 자신의 생각이고, 내 자신의 [...] 신화였다."(63) 그래서 그는 데미안에게 이를 실토한다. 그러나 징클레어는 전체 세계 존중의 사상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악마적인 세계에 대해서 찬성을 유보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그로서는 "살인이나 모든 가능한 악행(惡行)"(64)은 마땅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비록 전체 세계의 존중의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아직도 밝은 세계의 윤리적 규범을 어느 정도 지키고 있음을 뜻한다. 유의할

김종광 - 율려낙원국1

신분 차별도, 빈부 격차도 없는 곳.
모두가 등 따습고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곳.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을 꿈꾸는
허생의 이상국가, '율려낙원국'의 1부 - 도적 포획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우리에겐 친숙한 홍길동전.
홍길동이 세웠다는 율도국은
두 번의 큰 장사로 많은 이득을 남긴 괴짜양반 허생에게
그 같은 이상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모티브가 된다.

1부의 내용은
허생이 이야기꾼 황다설을 통해 율도국의 지도를 얻고,
율도국 건설에 필요한 재화를 준비하게끔 하고,
율도국까지 길 안내를 할 유연기를 도적에게서 구출해내고,
율도국에 머물게 할 도적들을 잡아(?)-결국 스스로 선택하였지만- 섬으로 향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돈과 무력의 필요성, 통치자와 피통치자 간의 갈등,
권력의 이념과 형태의 변화, 민중들의 각별한 이야기 등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허생이 살아온 삶 보다
그와 함께한 민중들의 삶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져
조선시대의 양반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삶의 애환과 슬픔이 잘 묻어났기 때문인지.
결국엔 의심할 바 없는 이상주의적 인물인 동시에 영웅인 허생이라는 인물의 삶보다
그에게 휘둘리고(?) 있는 민중들의 삶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돈이 없고, 배움이 없고, 갈아야할 밭이 없고, 마누라와 자식이 없는 도적들을
율도낙원국이라는 이름의 지상낙원에서 살게 하는 것이
허생 말대로 과연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 인 것인지.
과연 그들을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길인 것인지.
도적들이 날뛰지 않는 편한 조선땅을 만들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허생이 바랬던 신분차별과 빈부격차가 없는 형태의 나라가 유지 될 수 있을까.
그들이 과연 행복했을까?
율려낙원국에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빨리 2부를 봐야겠다-_- 2부-낙원 건설기)


* 율려 (呂) *
율과 려, 둘다 조절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둘을 합친 율려는 예로부터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자고로 성군은 음악을 들고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에
율려는 불평등하고 파란곡절이 끊이지 않는 인간 세상을 구원할
최고의 가치로 알려져 왔다.
율려가 충만한 땅이 바로 태평천국이며 무릉도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율려 낙원국은 허생이 오래도록 꿈꾸고, 이루고자 했던,
율려가 충많난 낙원의 섬나라를 뜻한다.

2007-11-14 naver blog에 작성한 글 입니다.

정현숙 - 나쁜마음이 점점 커지면 배가 터져요

나도 이렇게 세상을 다르게 보았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한살 두살 먹으면서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나를 맞춰놓고
그 틀밖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만의 세계가 독특한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린것 같다.
이렇게 순수했었는데.

자동차는 무엇으로 가지라는 질문에 '운전대요' '바퀴'요 하면서 다투는 아이들.
기름이 있어야 가는 것은 내가 정해놓은 대답일뿐인 것을.
산타할아버지는 롯데 백화점이 산다는 아이들.
할머니가 하늘나라 가셨는데 핸드폰을 놓고 가서 전화 못한다는 아이를 위로하는 아이들.
비오는 날 우산을 돌리면 우산이 어지러우니 하면 안된다는 아이들.
아침먹고 왔냐는 말에 '아침 말고 맘마 먹고 왔어요' 하는 아이들.
가을 들판 허수아비 그림을 그리라는 말에 바탕색을 까맣게 칠하겠다는 아이들.
허수아비는 밤에도 그 자리에 서있으니까 까맣게 칠해야 한다는 아이들.
남을 도우는 사람 마음은 "꽃마음이요, 구름마음이요, 천사마음"이요 하는 아이들.
"착한 마음, 예쁜 마음" 그런것 보다 더 멋진말로 대답하는 아이들.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원석과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웃으며 울며 흐믓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이 사고뭉치 & 귀염둥이 아이들과 함께한 30년이라는 시간이
저자에게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일지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의 크기 만큼 순수함을 잃게 되었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동안 순수함을 잃게 되겠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순수성이 남아있는 휴식처와 같은 존재임을.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훗날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때,
아이의 순수함을 이해할 수 있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내 아이가 닮아도 되는.
그런 순수성을 조금은 간직하고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7-10-27 naver blog에 작성한 글 입니다.

헤르만 헤세 - 데미안

선과 악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싱클레어.
악의 세계에서 자신을 구해주는 데미안을 자신을 분신처럼 여기지만,
결국 자기 길을 인도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책이
어떻게 청소년 시절 누구나 한 번은 꼭 읽어야 하는 권장도서가 된 것일까.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라는것 때문일까.
(비슷한 장르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러했던 것 처럼.)

너무나도 심오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들,
독창적이고 기묘한 작가의 비유와 묘사들,
세상을 꿰뚫는 듯한 통찰력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헤르만 헤세를
어떻게 가슴 깊이 공감하고 느낄 수 있을까.
앞으로 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 것 같다.
더 깊이 읽어야 할 것 같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중에서 -


2007-10-26 naver blog에 작성한 글 입니다.

요이다 슈이치 - 7월 24일 거리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스페인의 어느 도시와 비슷하다면.
이곳에 스페인의 명칭을 붙이고
그 거리를 헤맬 수 있다면.
아마 이국적인 느낌이 들겠지.

주말에 삼청동을 들어서는 길목에서.
플로리다의 맑은 날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느꼈다.
인사동을 들어서는 길목에서.
태국의 주말시장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칼처럼 에이는 바람을 뚫고 아침 새벽 운동가는 길목에서.
삼성동의 빌딩숲이 시카고의, 뉴욕의, 파리의 빌딩숲과 겹쳐졌다.

항상 가던 길이 다르게 느껴지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내가 사는 곳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또 하나의 나의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곳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상상할 수 있다.

한 때 너무 크게 보여서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힘들여 옆에 있게 되더라도,
숨쉬기 조차 힘들 정도로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
내 자신이 무너져야만
다가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사람이 있었다.
실수 하지 않기 위해 내내 움츠리고 있었다.
하지만
실수를 저지르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 먹고 움직였다.
실수를 했고, 울었지만, 움직이고 이겨냈다.
그렇게 이겨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상상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상상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과연 무엇이 변했을까.
우리는 어떤 일이든 상상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심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 포르투갈의 바다 중에서 -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내내 움츠리고 있는 것보다,
실수를 저지르고 우는 한이 있더라도 움직여보려 한다.

2007-10-22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이사카 고타로 -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여기 명랑한 갱 4명이 있다.
나루세: 인간 거짓말 탐지기. 앞일을 정확하게 내다보는 갱의 리더.
교노: 최고의 달변가. 자칭 잘 나가던 권투선수. 타칭 수다쟁이
유키코: 오차율 0%의 체내시계를 타고난 갱의 홍일점.
구온: 소매치기의 천재. 동물애호가.

명랑한 갱 4명이 모여 은행털이를 계획한다.
심플하다.
은행에 들어간다. 돈을 가져온다. 차를 타고 도망간다.
가만히 앉아 남의 돈으로 제 주머니를 불리는 ‘은행’이니까,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돈을 훔치겠다는 맹랑한 그들이다.
이 명랑한 갱들이 뭉치고, 달리고, 털고, 나누고, 인생을 즐기는 동안
나도 뭉치고, 달리고, 속 시원해하면서 그들과의 시간을 즐겼다.
그 동안에도 작가는 그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잊지 않는다.
명랑한 갱 4인방을 통해, 교노의 연설과 나루세의 생각을 통해
많은 사회적 이슈와 인간의 약점에 대해 드러내고 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중에서]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와 사귀는 것을 ‘인생의 월반’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친구들이 있다.
유키코는 그런 생각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현명해질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살아온 날들만큼 영혼이 탁해지리라는 것이 유키코의 상식이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각자가 자기만의 주인을 갖고 있다.
여기서 ‘주인’이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근거가 되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의 상관 일수도 있고
자기만의 미학일 수도 있다.
일반 상식일 수도,
이해 득실일 수도 있다.
아무튼 사람들은 행동할 때 그 주인,
즉 룰에 따른다.

“올바른 것이 늘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아니에요.”

…..”인간은 후회해도 마음을 바로 잡을 줄은 몰라.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은 그런 인간들의 속성에 대한 변명이야.”

“ 들어봐, 이 세상이란 곳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어.
다시 말해서 난해한 영화 같다, 이거야.
전위적이라 몇 번을 봐도 내용을 알 수가 없어.
우린 그런 영문 모를 여화를 계속 앉아서 봐야만 하는 거야.
이해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나루세는 어디서, 뭐 이상한 잡지일 수도 있지만,
감독의 인터뷰를 읽은거지.
혹은 머리 좋은 평론가가 쓴 해설서이거나.
그러니까 영화를 봐도 이해를 하는 거야.
당황하는 일 없이.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모든 일을 다 꿰뚫고 있는 얼굴로
늘 침착하게 있을 수 있겠어? “
……………
나루세는 해설서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올바를 판단을 하고 구온 일행을 선두 지휘했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지금 지미치를 회의에 참석시킨 것은
현명한 인간의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해설서에 누락된 페이지가 있었거나,
감독이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고정관념에 대한...

- 가짜들 가운데 진짜를 섞어두면 사람들은 모두 진짜라고 여긴다.
- 어떤 일에 단언하려면 그만한 각오와 판단력이 필요한데,
그 두 가지 모두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이미 상실한 것이다.
- 겉모습만 바꾸면 동료도 못 알아본다.

정치가와 공무원에 대한...

- 죽어 마땅한 인간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이 나한테는 더 공포다.
- 말만 거창하게 하는 정치가나, 나라의 경기도 회복 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잘리지도 않고 질기게 붙어있는 걸 보면,
그쪽이 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야.
칼에 찔려 죽은 시체는 그에 비하면 심플하지.

권력남용에 대한...
- “적을 감싸는 자도 적이다”라는 억지 논리를
큰 나라 대통령이 당당히 공표하는 걸로 봐서 중학생 정도야 그런 생각쯤 하고도 남을 일이다.



초심을 잊지 말자.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루소의 말이 맞다.)

사람은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자신이 세운 그 원칙에 따른다.
나만의 원칙을 세우고 나의 ‘주인’으로 여기고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원칙을 세우기 이전에,
선행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원칙이 올바른. 원칙인가.
내가 따를 만한 주인인가.

올바른 것이 사람을 늘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지만,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

우습지만, 오늘도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다.

누군가의 해설서에도 누락된 페이지가 있었나 보다.

2007-10-22 naver blog에 작성한 글 입니다.

[얼마전 이 책을 읽었을 때,
작가의 위트와 기지에 놀랐었는데 얼마전 극장을 갔더니 영화로 개봉할 모양이더군요.
팜플렛을 보니 책 만한 재미를 주지 않을 것이 눈에 선해 조금은 안타까웠다는 ㅠ.ㅠ]

리처드 파크 코독 - 밀리언 달러 티켓

8가지 성공 원칙?
이것만 지키면 과연 비행기에서 만난 백만장자처럼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럼 우리 모두가 백만장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책을 읽을 때 항상 sarcastic 한 것은 아니다. 암튼:)
하지만 Tom이 만난 백만장자 Michael은,
그리고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백만장자들은
자기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음 에는 틀림없다.
책을 읽으면서 쉽게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아마 그것은 어느 누구나, 어느 책이나 해 줄 수 있는 조언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누군가 자신만의 원칙을 세울 때, 고려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Michael이 말하는 I B.E.L.I.E.V.E. 원칙을 들여다 보면,

I believe in myself. (자기 확신)
Be passionate and want it. (동기부여)
Extend your comfort zone. (도전 의식)
Lies and luck don’t work. (준비 하기)
Install goals. (목표 설정)
Enjoy hard work. (즐거운 일)
Very, very persistent. (인내 하기)
Expect failure. (실패 예상)


“ 또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일을 미루거나 늑장을 부려서도 안 되네.
아까 기회의 씨앗을 뿌리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씨앗이 자라 수확할 시기가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네.
힘든 일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기회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즉각적으로 움직이고 대처할 수 있도록 말이야.”

- 밀리언 달러 티켓 中 -

나만의 원칙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
원칙에 따라 준비된 사람이 되는 것.
바로 내 꿈에 한 발자국 다가 서는 것.

2007-10-15 naver blog에 작성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