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9

당신이 앞으로 10년 이내 읽어야 할 책 100권 - 미술(하)

6. 김석철의 20세기 건축 산책/ 김석철/ 생각의 나무올해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피카소, 미로와 함께 3대 천재 중 한 명으로(왜 살바도르 달리가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지만) 손꼽히는 예술가인 가우디를 알고 싶다면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 등 20세기 현대 건축을 이끈 건축가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일단 그 입문서로 이 책을 펼쳐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건축이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어려운 그 무엇으로 생각되는 것은 어느 시기부터인가 건축이란 것이 하늘 높이 치솟는 마천루란 이미지에 가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은 까닭일 수도 있다. 사람이 빠진 건축은 단지 바벨탑에 불과하다. 그 자신이 논란의 대상이었던 '예술의 전당'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을 지은 건축가로서 또 교육자로, 건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들의 저자인 김석철 씨는 현대 건축의 다양한 면모를 한 권의 책에 열두 명의 건축가를 빼곡하게 세움으로써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건축가를 문명의 상형문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명이라는 것이 도시를 의미한다고 했을 때 그의 표현은 너무나 적절한 것이다. 이 책은 건축의 역사나 이념, 건축공학의 개념 등 추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현대건축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건축가들의 삶과 주요 작품, 건축관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그들의 건축물들을 담은 사진을 통해 이들이 남긴 작품들이 어째서 걸작 예술로 남게 되었는지 자신의 소회를 담아 소개하고 있다. 다만 때때로 자신의 소회가 지나쳐 위대한 건축가들의 면모를 가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과 도판 상태의 수준이 균일하지 않다는 흠은 있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건축가들을 다루면서 이 정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 드문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큼 좋은 책이다.

7. 20세기 서양 조각의 거장들/ 정금희 / 재원 - 근대 미술이 회화 중심으로 발달해서인지 국내의 미술계 상황이 회화 중심의 미술 교육이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조각에 대한 좋은 책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조각가의 길을 가고 싶었으나 건강과 재정적인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조각에 대한 구상으로 달랬던 것처럼 조각가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달랠 수 있는 책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이 책의 저자인 정금희 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조각가 자드킨 오십에 대한 논문을 쓴 적도 있는 미술학자이다. 이 책은 20세기 서양 미술의 중요 조각가 10명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로댕과 부르델, 브랑쿠시, 자코메티, 칼더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조각가 마이욜과 자드킨 오십도 빼놓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책치고는 기대 이상의 기쁨을 준 책이고, 20세기 서양 조각의 주요한 흐름을 일구었던 조각가들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조망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런 책은 독자들이 많이 구입해서 읽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좋은 책의 필자가 좀더 심화된 다음 책을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8. 예술혼을 사르다 간 사람들/ 이석우/ 가나아트- 19세기 한 무명 화가의 작품이 20세기 소더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 화가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빈센트 반 고흐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고흐의 편지들이 출판되고 그의 삶이 대중들에게 그렇게 광범위하게 유포되지 않았더라도 오늘날 고흐가 이룩한 그런 신화는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신화는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광휘는 현재와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다. 고흐가 편지를 그렇게 잘 쓰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그에 대해서 그토록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열광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고흐의 그림에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사실 얄팍한 자존심 한 장 걷어내고 보면 그의 치열하고 불우한 삶에 대한 그렇지 못한 자들의 부러움과 그의 삶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부분도 큰 것이다.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이석우 교수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비평가가 아니다. 그는 단순히 미술 애호가로서 우리들을 화집이나 팜플렛의 연보 나열에 갇힌 작가들의 인생과 그들의 내면 세계로 인도해 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이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 말인지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화가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화가들로 그동안 화랑에서 다만 호당 얼마라는 식으로 평가되던,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는 그만큼 무명일 수밖에 없는 우리 화가들의 치열한 인생이 녹아 있다. 한국의 뚤루즈 로트렉이라 했던 손상기를 비롯해서 우리에게 예술세계보다는 동백림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이응노 등 13인의 한국 화가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가끔 미술 팜플렛을 읽다보면 비평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할 글들을 비평이라고 써놓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미술 감상이란 게 반드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게 된다면 더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교양을 갖추는데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는 책이다.9. 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가림/ 월간미술<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의 시인이자 현재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있는 이가림 선생이 오랫동안 <월간미술>에 기고하였던 내용들을 묶어 책을 냈다.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미술을 앞에 두고 그에 걸맞은 작가들을 어울리게 하는 것인데 광범위한 내용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나 글읽는 재미만큼은 만끽할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프랑스의 시인인 폴 엘뤼아르는 '파블로 피카소'라는 제목의 시에서 '해맑은 하루 나는 만났다 낙천적인 얼굴의 친구'라고 쓰고 있다. 피카소는 그의 시집 <사랑촵시>의 삽화를 그렸고, 사상적으로 엘뤼아르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림과 시를 통해 스페인 내전과 그 와중에 있었던 게르니카에서의 학살을 고발한다. ''그림'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그림을 찾아나선 예술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피카소와 엘뤼아르처럼, 장르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교감을 나눈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피카소와 엘뤼아르처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사람들에 대한 것도 있고, 플로베르와 쿠르베처럼 실제 교우관계는 없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사실주의'를 확립했던 사람들의 예술관을 비교하는 글도 있다.그리고 한 가지 부러웠던 점은 저들은 미술가와 문학작가의 교감이 가능한데 우리는 왜 안 되는가이다. 결론 둘다 상대의 예술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10.춤추는 죽음1.2/ 진중권/세종서적- 먼저 일러두고 싶은 말씀은 이 책을 읽기 전에 혹은 읽은 후에라도 필립 아리에스의 저서들을 읽어보는 일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죽음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아리에스의 책을 읽어둘 필요가 있다. 그는 죽음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중요한 역사학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진중권이라고 하면 '전투적 글쓰기'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매우 불행한 일일 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중요한 미학 관련 연구자이자 필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역량과 에너지를 온전히 학문적인 분야로 쏟기엔 우리 사회가 그의 독설을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이 책 '춤추는 죽음'을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무렵엔 진중권이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던 무렵이라 그가 이렇게 훌륭한 미술과 미학 연구자인줄 미처 몰랐던 때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때문에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아주 재미있었고, 유익한 책이었다. 동양에서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역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서야에서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학이란 학문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책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 진중권은 유럽의 중세로부터 현대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 이르는 죽음의 여정을 미술과 기독교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란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죽음은 "우리의 죽음"으로부터 "나의 죽음"으로 진화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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