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9

서머싯 몸 - 달과 6펜스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책 표지에 고갱의 작품이 실려있는 이유는,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책은 고갱을 모델로 했기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서머싯 몸의 두 번째 작품,
쉽사리 손에서 떼어내기 어려웠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해준,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

책을 펼치기 전 그리고 읽는 동안 “달과 6펜스”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책 제목에 집착하는 습관이 생겼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분명 제목에서부터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이다.

학부 때 영문학 시간에 배운 자연 또는 정신과 물질의 대조?
어렴풋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달과 6펜스 동전 모두 동그랗지만 각기 다른.
달은 화가가 되겠다며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떠난 스트릭랜드가
타히티 섬에서 죽는 날까지 찾고자 했던 혼이 담겨있는 삶이라면,

6펜스는 런던의 문단과 사교계의 속물들,
마음은 순진하나 고뇌하는 예술 정신은 없고 잘 팔리는 그림만을 그리는 화가 스트로브,
육체적 관능만을 추구하는 블란치 스트로브,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고결한 삶을 선택한 동료덕분에 명예와 부를 누리면서도 그 동료를 멸시하는 알렉 카마이클,
가정을 떠났을 때 저주를 퍼부었던 남편이 천재로 알려지자 그의 아내였음을 자랑하는 스트릭랜드의 부인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현실세계의 삶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이들의 삶을 달과 6펜스로 압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했던 그의 삶을 과연 우리의 잣대로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나만의 잣대로 비난해도 되는 것일까
그의 삶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6펜스’의 삶 안에서 과연 행복할까

참고로 서머싯 몸의 여성 혐오적인 표현들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다면,
그가 혐오하는 것은 여성 자체가 아니라
그 사회의 틀에 박혀 있는,
다시 말해 남성 중심&남성 우월사회에 종속되어 있었던 여성상에 대한 혐오라고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중에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그 말은 아무도 자신의 기벽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또한 기껏해야 자기가 이웃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경향이 탈인습적이라면 세상 사람의 눈에 쉽사리 탈인습적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터무니없는 자존심을 가지게 된다. 위험 부담 없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문명인의 가장 뿌리 깊은 본능일 것이다. 여자가 인습을 넘어서려다가 성난 도덕심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게 되면 기겁을 하고 재빨리 체통이라는 방패를 찾는다. 나는 남들의 의견 따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허세이다. 그것은 남들이 자신의 조그만 잘못들을 비난할 때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들은 아무도 그 잘못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의 사물, 말하자면 자기 자아에게는 낯선, 어떤 목적의 도구가 되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마치 이국땅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 나라 말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생각을 말하고 싶어도 기초 회화책의 진부한 문장으로밖에 표현한 길이 없는 사람들과 같다.

사랑에 빠진 기간에도 남자는 다른 일들을 하며 그 일들에 신경을 쓴다. 직업을 갖고 먹고 살아야 하니 응당 그 일들에 신경을 쓴다. 스포츠에 빠지기도 하고 예술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하며, 한 가지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일들은 일시적으로 미루어 둔다. 그때 그때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 한가지 일이 다른 일을 침범하면 못마땅해 한다.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데 비해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는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2007-12-09 naver blog에 작성한 글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